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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웹자서전

7화 “가슴에 묻은 큰 아들”

by 안양하세요~ 2022. 5. 16.

<김동연의 웹자서전 7화 “가슴에 묻은 큰 아들”>

내가 미국 세계은행(IBRD)에 근무하게 됐을 때 고등학생인 큰 아들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 때문에 미국 가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 온 뒤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국제관계 전공으로 미국 서부의 대학에 들어간 후 혼자 4년간 대학생활을 했고 동부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 후 인도네시아 오지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다. 워싱턴에 있는 국제기구에 들어가서는 자기 전공과 딱 맞는 일이라며 신나서 일을 했었다. 장교 입대를 계획하고 있을 정도로 건장한 청년이자 정직하고 배려심이 깊어 많은 사람이 좋아했던 스물다섯 큰 아들이 이제 막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아오를 무렵,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름이 끝나가는 어는 날, 퇴근해서 농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친 것 같다며 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워낙에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서 크고 작은 부상이 자주 있던 터라 크게 놀라지 않았고 정 힘들면 근처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인근 한인 타운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고 더 고통스럽다며 나중에는 움직이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한국에 들어와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비행기 타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해서 인천공항에 구급차를 대기시켜 입국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가도록 했다. 그때까지도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벌어졌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큰 아이의 힘든 투병 생활이 시작됐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투병기간 중 반은 병원에 있어야 했다. 큰 아이가 입원해 있던 기간 내내 집사람은 병실을 지켰다. 단 하루도 큰 아이 곁을 떠나 집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큰 아이는 가족들 앞에서조차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왜 이런 병에 걸리느냐고 내가 주치의에게 물었을 때 “원인은 모르고 랜덤으로 걸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왜 하필 내가?’ 라고 원망할 법도 한데 큰 아이는 우리 앞에서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오히려 우리 가족 중 누군가 아파야 한다면 그게 자기인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큰아이의 평소 성격 그대로였다.

항암 치료는 힘든 과정이었다. 문제가 있는 백혈구뿐 아니라 건강한 백혈구까지 죽이는 여러 차례의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항암 치료만으로는 되지 않아 결국 골수이식을 받기로 했다. 자가 골수이식과 타인 골수이식에서 모두 실패했고 암은 곧 재발했다. 골수이식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고 큰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두 번의 골수이식에서 실패한 뒤 마지막으로 나의 골수를 이식하기로 했다. 부모와 자식의 골수는 원래 잘 맞지 않지만, 나는 처음부터 내 골수를 이식했으면 했다. 큰 아이에게 왠지 내 골수가 이식되면 기적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낫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해보긴 처음이었다. 내 모든 힘과 마음을 쏟아 기도했다.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모든 것을 내려놔도 좋다고 생각했다. 재산도, 지위도, 심지어는 내 목숨까지도, 어떤 서원도 하겠다고 했다. 내 기도가 응답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 간절한 기도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2년1개월이라는 시간을 병상에서 투병하던 큰 아이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만 나이 스물일곱 다섯 달 이틀째 날이었다.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도 있나 싶었다. 그저 따라서 함께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너무나 사랑한 아들이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고 싶었지만, 젊었을 때 경험했던 ‘힘든 환경이나 어려움’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엄하게 대했던 모든 일들이 많이 후회돼 가슴을 쳤다. 좀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칭찬해줄 것을.

떠나보낸 뒤에도 그 아픔을 매일 똑같이 느끼는 것이 힘들었다. 아픔을 잘 견디고 있는 ‘척’을 해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집안 청소를 하다 큰 아이 물건만 봐도 우는 아내 앞에서는 강인한 척해야 했다. 때로는 나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서재 책상에 앉아 문을 닫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많이들 그런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이라고. 일에 몰두해 잊어보라고. 고마운 위로의 말이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큰 아이는 내가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공직에 있는 동안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자리의 높음, 명예나 명성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즐겁게 일할 때, 소신껏 일할 때, 힘든 일에 좌절하지 않고 헤쳐 나갈 때, 떳떳하고 부끄럼 없이 당당할 때, 주위와 사회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큰 아이는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런 길을 계속 가고 싶다. 큰 아이가 있었더라면 박수치며 응원할 길을 가고 싶다.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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