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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웹자서전

1화 “그리운 아버지”

by 안산율남매아빠 2022. 5. 13.

<김동연의 웹자서전 1화 “그리운 아버지”>

나는 1957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서 태어났다. 내 나이 11살, 사업가이던 아버지가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아내와 네 자식을 두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비록 공부는 짧았지만 젊어서 사업을 크게 일으켰던 분이었고, 내가 시험에서 일등이라도 놓치면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 정도로 엄하셨던 분이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길 퍽이나 좋아해 수해가 나면 늘 어린 나를 앞세우고 신문사에 가서 수재의연금을 내셨고, 혼자되신 할아버지를 어린 나이 때부터 극진히 모신 더 없는 효자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남인 나는 소년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살던 큰 집에서 쫓기듯 나와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으로 이사했다. 그 판자촌마저 도시정비 사업으로 헐리면서, 허허벌판이었던 경기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돼, 한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다.

학업은 물론 끼니도 걱정이었다. 어려워도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채석장에서 일하고, 산에서 나물을 캔 후 파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17세의 나이로 한국신탁은행, 지금의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세 동생까지 부양해야하는 열일곱 소년 가장이었다. 어렵게 공부하고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한 탓인지 남들보다 빨리 철이 들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의연하고 다부진 청년의 가슴 밑바닥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늘 사무치게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 원망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싶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젊디젊은 아내와 자식 넷을 두고 그렇게 빨리 가셨느냐고, 내 작은 어깨에 짊어지기에는 이 짐들이 너무 무겁고 버겁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25년이 되던 해에, 길이 확장되면서 고향에 있던 산소를 이장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다음날 하관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만 하루 동안 유골을 옆에서 모실 수 있었다. 그 하루 동안 나는 소리죽여 눈물 흘리며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버지께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었던 내 소망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가졌던 ‘아버지와의 대화’라는 꿈을 이룬 후 내 버킷리스트는 순위가 바뀌었다.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자식들과 철든 남자 대 남자로서 대화하고 싶다는 소망이 내 버킷리스트 맨 윗줄에 올랐다. 두 아들에게 나는 누구고 무슨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두 아들은 무슨 꿈들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적어도 큰 아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2화에 계속)

* ‘김동연의 웹자서전’시리즈는 책 <있는 자리 흩트리기, 김동연, 쌤앤파커스, 2017> 내용을 기반으로 제작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DY.AfterYou/posts/41901784671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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