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의 웹자서전 2화 “주경야독”>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가정형편상 진학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 취직시험을 봤다. 경기도 광주군 어느 시골 허허벌판 위에 강제 이주를 당해 살던 시절이었다. 3학년 가을 어느 날 수업시간, 취업주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내가 응시한 은행시험 합격자 발표를 했다. 합격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그 당시 은행은 많은 사람이 선망하던 직장이었고 입행시험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집에 들어가 합격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어머니가 박수를 치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합격자 발표가 나고 한 달쯤 뒤 은행에 출근했다.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당시에는 기성복이라는 것이 없었고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던 시절이었다. 번듯한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을 형편이 되지 못해 동대문시장에서 옷감을 떠 시장 안에 있는 양복 만드는 허름한 집에서 맞춰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 때 만 나이로 열일곱이었다.
어려운 입행시험에 합격해 은행에 들어가 우쭐했던 기분도 잠시, 곧바로 힘든 현실에 부딪혔다. 열심히 일했고 나름 인정도 받았지만 ‘고졸’출신이란 벽이 높았다.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50미터쯤 뒤처진 출발선상에서 뛰는 기분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현실과 대학에 가지 못한 열등감,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절박감들, 이런 생각들이 내 안에서 서로 교차되며 나를 괴롭혔다.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 했고, 현실을 깨기에는 내가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우선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반란’이 필요했다. 작은 돌파구는 야간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게 대학입시 준비를 한 끝에 대학생이 되었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공부에도 제법 재미가 붙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이미 가장역할을 하고 있었던지라 나만을 위해 가족들 부양을 제쳐놓고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누런 월급봉투째 어머니께 드렸던 생활비,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순대, 찐만두 간식거리, 형의 수고에 대해 늘 말없이 눈으로 위로를 보내던 한 살 터울 남동생의 짠한 눈빛, 월급날 사다주는 소년소녀 잡지와 작은 선물을 목 빼고 기다리던 두 여동생의 반짝이던 눈망울.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현실은 적잖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맏이로의 의무를 피하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야간대학을 다닌다고 업무를 등한시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은행의 본점 기업분석부에서 기업대출을 위한 신용조사를 담당할 때는 다른 선임자나 책임자들이 말단 행원이었던 내가 작성한 조사서를 텍스트로 삼아 따라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야간대학생이 되어서 주경야독을 하면서도 내 안의 목마름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장래는 여전히 암담해 보였다. 야간대학을 졸업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 보였다. 주위에는 온통 명문대 출신, 경제적으로 별 걱정이 없어 달리기 편한 ‘몸이 가벼운’ 사람들로 넘쳤다.
그러던 어느날 집을 떠나 생활했던 은행 독신자 합숙소에서 옆방 선배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수험생을 위한 잡지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맨 뒤에 있는 합격기를 읽고 고시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
람들은 모두 다 현실성 없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했지만 시험공부는 내게 또 다른 돌파구였다. 결국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대학생 그리고 더 깊은 밤에는 고시 수험생이 되는 1인3역을 하게 되었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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