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의 웹자서전 6화 “공직의 길”>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시작한 만 34년의 공직생활 내내 나는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를 신조로 우리 경제와 사회문제 해결에 소신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한 세대 앞인 2030년을 바라보며 우리 정부 최초의 국가 장기 발전전략인 ‘비전2030’을 수립했다. 국책 연구소의 박사와 대학교수 등 외부 전문가 60여명으로 인재풀을 만들어 1년 가까이 60여 차례의 토론회와 5차례 세미나, 국민 대상 설문조사 등을 통해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보고서 내용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미래 우리 사회에 닥칠 위험요인들, 저성장, 양극화, 저출생, 고령화 등을 경고하며 성장과 분배의 고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정부 보고서로는 처음 지적한 내용들이었다.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이제까지의 성공경험에서 탈피해 ‘선 성장 후 복지’의 경제 패러다임을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으로 바꾸는 복지국가를 지향했다. 양적 투입 위주의 불균형 성장이 아니라 혁신 주도형 균형성장이 필요하며 투자의 중점은 물적 투자에서 인적·사회적 자본 투자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비현실적인 비전과 정책이라며 논란과 혹평을 받았던 보고서였지만 최근의 사회 현상이 보고서 내용 그대로를 반영하면서 다시 재조명 받았다.
결과적으로 비전2030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편으로는 의미 있는 좌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그리고 미래에 닥칠 구조적인 문제를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동반성장과 복지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비전 2030의 내용은 그 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실천에 옮겨졌다.
공직생활 중 몇 가지 잊혀 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예산실 국장으로 있을 때였다. 명절 때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있으면 보통 사무관이 가서 봉투를 주고 온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홈리스 수용시설이었는데 내가 직접 가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의례적인 행사가 있을 때면 그분들도 형식적으로 온 거 다 안다. 차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내가 여긴 예전에 뭐가 있었고 그땐 허허벌판이었다며 얘기를 하다 보니 그걸 어떻게 아는지 물었다.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 살다 강제 이주돼 온 게 옆 동네라고 했다. 그 얘기를 하니 달라졌다.
부총리를 그만두고 지방을 많이 다닐 때도 농촌, 어촌 다녀보면 그분들이 금방 아는 걸 알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 사진 찍으러 온 건지 아닌지. 밑바닥까지 가본 경험, 긍정적으로 일어선 의욕이나 근면성이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음에 오히려 감사할 수 있다.
2012년 6월, 기획재정부 차관 시절, 한 중학교 수학교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언론에서 내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기사를 우연히 봤다며 가정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꿈과 희망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달라는 이야기였다.
직원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학교 측에도 외부에 이야기하지 말라 부탁하고 나는 전체 학생 수가 21명인 강원도의 중학교를 방문했다. 각기 다른 책 21권을 구입해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쓴 뒤 직접 전달했다.
그리고 나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며 "주어진 어려움을 원망하지 말고 큰 꿈을 가져라. 지금의 어려움은 '위장된 축복'이며 참 행복을 느끼는 단계까지 가려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며 학생들을 다독여 주었다. 강원도의 그 작은 중학교는 첫 방문 이후에 다섯 번을 더 찾아갔다. 그저 바람 한 번 불어, 들렀다 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싶었다.
처음 갔을 때의 재학생들은 이미 졸업을 하고 춘천 등지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일부와는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을 정도가 됐다. 여러 명이 손 편지를 쓰기도 했고 자기의 꿈을 밝히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도 했다.
젊은 시절 나를 둘러싼 환경을 뒤집는 반란은 꼭 시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처한 환경을 뒤집는 반란을 일으키는 데 힘을 보태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리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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